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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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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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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의 인물
자장율사 (慈藏律師, 590~658년)
  • 자장율사 자장율사 진영
    (慈藏律師, 590~658년)
  • 신라의 고승이자 통도사와 금강계단을 세운 창건주이다. 법명은 자장, 속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선종랑(善宗郞)으로 진골출신의 귀족 무림(茂林)의 아들이다.
    자장의 아버지인 무림은 자식이 없어 아들을 낳으면 출가시킬 것을 축원하였는데, 그리하여 얻은 아들이 자장율사라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자, 20대 초반에 논과 밭을 희사하여 원녕사(元寧寺)를 짓고 불가에 귀의하였다. 왕은 그에게 재상의 자리에 오를 것을 명하였지만 “나는 차라리 단 하루를 살더라도 계를 지키고 죽을지언정 파계를 하고 백년 동안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거부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왕은 자장의 결심에 감동하여 다시는 그의 수도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636년(선덕여왕5) 칙명을 받아, 제자인 실(實)등 1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종남산(終南山)과 문수보살의 오대산(五臺山, 다른 이름으로는 淸凉山)에 머물렀다. 오대산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하여, 가사와 발우 그리고 정골사리와 치아사리를 받았다. 이후 자장율사는 더욱 수행을 깊이 하여 유학한 지 7년 만인 643년, 선덕여왕의 요청으로 귀국하였다. 자장율사는 당 태종이 선사한『대장경』400여함과 당번, 화개 등을 가지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자장율사는 귀국하여 분황사(芬皇寺)에 머무르며, 궁중에서『섭대승론(攝大乘論)』을 강의하였고, 황룡사(皇龍寺)에서 『보살계본(菩薩戒本)』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또한 선덕여왕에게 황룡사 9층목탑을 세울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 후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승단을 통괄하였다. 645년(선덕여왕14) 황룡사 9층목탑이 완성되자, 황룡사의 2대 주지가 되어 머물렀다.

    646년에 영축산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을 쌓아 사방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받아들여 계를 주었다.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는데도 일조하여 649년(진덕여왕3)에는 왕에게 중국의 복식을 따를 것을 건의하여 신라에서 관복을 입게 했으며, 650년에는 당나라의 연호 사용을 건의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말년에는 경주를 떠나 강릉(江陵)에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뒤에 태백산(太白山)에 석남원(石南院, 현재 淨巖寺)을 세워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입적 후에는 신라 10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추대되어 흥륜사(興輪寺) 금당에 모셔졌다.

    전국 각처에 10여 개의 사찰을 창건하고, 전국의 승려들에게 계를 내려 규율을 단속하고, 사신들을 파견하여 지방 사찰을 순회 감독하게 하는 등 대대적인 불교 정비에 나섰다. 아울러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국력의 신장과 국론의 통일을 꾀하고, 신라 불국토사상을 전개하여 불교의 토착화에 공헌하였다.

    저서로는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 1권, 『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 1권, 『사분율갈마사기(四分律羯磨私記)』 1권, 『십송율목차기(十誦律木叉記)』 1권, 『관행법(觀行法)』 1권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저서는 현재 전해오지 않는다. 다만, 일본 승려 양충(良忠)의 『법사찬사기(法事讚私記)』 중에 자장의 『아미타경의기』에서 옮긴 구절이 남아 있다.
※ 자료출처 : 통도사 홈페이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