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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세계유산적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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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의 세계유산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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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보편적 가치(OUVㆍoutstanding universal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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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하 ‘산사’)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형과 무형의 문화적 전통을 지속하고 있는 살아있는 불교 유산이다. ‘산사’를 구성하는 7개 사찰은 모두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종교 활동, 의례, 강학, 수행을 지속적으로 이어왔으며 다양한 토착 신앙을 포용하고 있다. ‘산사’의 승가공동체는 선수행의 전통을 신앙적으로 계승하여 동안거와 하안거를 수행하고 승가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한 울력을 수행의 한 부분으로 여겨 오늘날까지도 차밭과 채소밭을 경영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7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대승불교의 다양한 종파를 수용하여 수많은 불교 사찰들이 창건되었는데, 도시에 세워진 사찰들과 산지에 세워진 사찰들로 나누어진다. 이후 조선(1392~1910)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도시 사찰의 대부분은 강제로 폐사되었지만, ‘산사’를 포함한 산지사찰들은 현재까지 승려들의 신앙과 정신 수행, 일상생활을 위한 승원으로서의 본래의 기능과 특징을 지속하여 왔다. 즉, 도시 사찰은 거의 사라진 반면 산지사찰인 산사들은 오히려 신자들의 신앙처로서의 기능을 확대하고 수행에 필요한 공간과 시설을 갖추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산사’를 구성하는 7개 사찰은 종합적인 불교 승원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또한 산기슭에 계류를 끼고 입지하여 주변 자연을 경계로 삼는 개방형 구조를 나타낸다. 최소 규모로 축대를 쌓아 자연 지세에 순응함으로써 사찰의 건물 배치는 비대칭적이고 비정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연 순응적으로 사찰의 영역 확대가 이루어져 곡저형, 경사형, 계류형이 대표적인 사찰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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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통도사는 금강계단으로 구현된 계율종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스투파에 대한 숭배의 전통을 보여준다. 스투파 숭배는 인도와 다수 테라바다 불교 국가에서 행해지는 예불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통도사 금강계단을 통해 한국불교 도입기의 수투파 숭배 양상을 여전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금강계단과 인접한 주불전에 불상이 봉안되지 않은 사실로도 나타난다. 사리는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신앙의 정수를 나타내는 성유물이다. 금강계단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한국불교 신앙과 부처님 숭배의 중요한 장소였다. 부처님 자체를 상징하는 금강계단의 존재는 통도사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금강계단은 한국불교의 정신을 구현하는 성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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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신라의 정신적 지주로서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한 불교는 통일 이후에도 계속되어 왕권 중심의 새로운 통치 체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의상대사(625-702)는 왕명에 따라 원융사상의 화엄 교리에 근거하여 부석사를 창건하였다. 원융사상의 화엄 교리는 통일국가의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특징은 의상대사에 의해 전국에 건립된 화엄십찰 등 화엄종과 관련된 많은 불교미술에 잘 나타나 있다. 통일신라 건국시기 국가에 의해 건립된 화엄십찰 중 하나인 부석사는 그 건립 단계부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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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봉정사가 위치한 안동 도호부(현 안동시)는 16세기 이래로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였다. 영남 성리학의 중심지였던 안동에서 박해를 입지 않고 봉정사가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봉정사의 스님들과 안동을 본거지로 한 사림 사이의 문화교류의 결과였다. 봉정사 응진전 구역의 건물 배치는 조선 시대 사대부 가옥의 ‘ㅁ’자형 배치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봉정사의 입구 누문인 덕휘루(후에 만세루로 개칭)의 편액명은 성리학 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더욱이, 안동의 저명한 성리학자인 이황(1501-1570)과 그의 문하생들은 자주 봉정사를 방문하였고, 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1665년에 봉정사 인근(완충구역)에 위치한 명옥대가 건립되기도 하였다. 봉정사는 불교경전의 간행을 위해 간역소를 운영하였는데, 이곳에서 지역 문인들의 문집도 출판하고 관리하면서 사찰경제에 일조하였다. 안동 지역 성리학자들과의 문화적 교류는 봉정사가 조선시대에도 살아있는 승원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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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조선 왕실의 원찰로 지정되었던 법주사는 왕실의 특별한 관심을 받던 사찰 중 하나였다. 원찰로 지정되면, 사찰은 국가의 과도한 세금과 노역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고 사찰 경제를 유지하며 조선시대 내내 번창할 수 있었다. 1765년 영조(재위1724-1776)의 후궁인 영빈이씨(1696-1764)를 위해 법주사에 건립된 선희궁 원당은 조선시대 억불정책 하에서도 지속되었던 불교와 왕실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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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승병의 집결지였던 마곡사는 일본의 침략전쟁(1592-1598) 시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란 후 17세기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대규모의 야외 법회가 산사에서 열려 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는데, 이는 전후 복구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규모 야외 법회가 대중화되자, 17세기부터 야외법회를 위한 대형 불화인 괘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뛰어난 초기 괘불 작품들이 마곡사를 중심으로 한반도 중부 지방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였고, 이 지역 고유의 양식이 한반도 동남부지역(현 경상북도, 경상남도 지역)에도 전파되었다.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괘불들은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후 조선 사회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마곡사괘불>(1687)의 화기에는 대규모 불사의 완성을 위해 다양한 물품을 공양하였던 지역 스님들과 신도들로 이루어진 시주자 명단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이것은 조선후기 사찰의 재건, 대규모 불교의례 거행 등의 제반 불사에 대한 후원 주체가 왕실 혹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이행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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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선암사의 특징은 스님들에 의해 경영되는 차밭과 더불어 스님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대규모 시설들에 있다. 그 기원이 고려시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경내의 ‘ㅁ’자형 중층건물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공동체 생활단위이다. 이 6채의 건축물들은 선암사 거주인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대규모의 생활시설이 선암사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선암사가 근대 한반도 서남부 승가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선암사에서는 20세기 초 근대화에 맞추어 승가교육의 전통이 대대적으로 개혁되었다. 그 결과 1906년에 선암사 승선학교, 1914년에 광주 포교당, 1920년에 지방학림과 같은 현대식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선암사 승선학교는 1913년 개편되어 보통학교와 전문강원으로 분리되어 운영되었다. 20세기 초 선암사의 현대식 교육기관의 설립과 개편된 학제운영은 승원의 전통강원을 계승한 근대 승가교육 개혁의 중요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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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대흥사는 석가신앙이 중심이지만 표충사로 대표되는 호국신앙 역시 대흥사의 특별한 요소이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서산대사(1520-1604)와 제자들의 제향을 위해 1789년 국가의 허가 아래 건립된 사당이다. 서산대사의 공로에 대한 국가의 인정과, 표충사 건립 및 유교식 제향을 위한 국가적 지원은 스님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향상시켰다. 승가 공동체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전란으로 소실된 사찰들의 복구 또한 지역 신도들의 참여와 함께 대규모로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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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은 탁월한 산지 불교 승원의 사례로 인정되는 7개의 사찰로 구성된 역사적인 유산이다. 이들 사찰은 7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창건 시기에 불교의 다양한 종파를 구현하고 있으며 승가공동체를 위한 신앙, 수행, 생활과 관련된 전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모두는 원래의 기능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은 사찰의 전체 경내가 한국 불교의 개방성에 의해 형성되었고, 불교 성소로서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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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및 완전성
- 통도사
- 부석사
- 봉정사
- 법주사
- 마곡사
- 선암사
-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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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의 진정성은 불교의 종교 활동과 의례를 위한 유산요소들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에 근거를 둔다. 또한 산사의 위치 및 입지, 전통과 기술 및 사찰 관리 능력, 무형유산에 기반한다. 비록 일부 건물들의 기능은 사찰의 운영을 위해 변경되었지만, 건축적 요소들은 전통 건축 기술을 사용하는 수리 복원 원칙에 따라 세심하게 관리 ‧ 유지되고 있다. 이 불교 승원들의 종교적인 전통과 기능은 높은 수준의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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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든 7개 산사는 한국불교 산지 승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산지 입지, 종교 활동과 일상생활을 위해 잘 보존된 건축물들, 불전과 선 수행을 위한 영역, 강원과 요사채가 이에 해당한다. 유산 요소들을 위협하는 외부 압력은 거의 없으며, 근대기의 대규모 변경과 소실도 없어 7개 산사들은 온전한 상태에 있다. 이 산사들은 시대에 따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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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합하는 등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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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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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은 오늘날까지 불교 출가자와 신자의 수행과 신앙, 생활이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승원이다. 불교의 종교적 가치가 구현된 공간구성의 진정성을 보존하며 지속적으로 승가공동체의 종교 활동이 이어져 온 성역으로서 특출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