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제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의승군을 일으켜 왜군을 격퇴하고 나라를 구한 구국업적을 기리고자 조선시대부터 대흥사에서 치러온 국가제향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국가규모의 제사는 단절되었고 사중에서 기일에 대재(大齋)를 이어왔다. 1993년부터는 탄신일을 기해 봉축대제를 지내다가, 서산대제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과 고증을 거쳐 2012년부터 매년 4월 서산대사 탄신시기에 국가제향의 위상으로 서산대제를 설행하고 있다. 서산대제(西山大祭)는 서산대사 휴정(休淨, 1520~1604) 스님의 구국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치러온 국가제향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임진왜란 때 수천 명의 승려를 이끌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서산대사의 공훈을 기려 1602년(선조 35)에 선조는 정2품인 당상관과 증호를 내렸다. 2년 뒤 서산대사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였고 유훈에 따라 유품을 1607년 대흥사로 모셔 법맥을 잇고 있다.
그로부터 2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1789년(정조 13)에 정조가 서산대사의 공훈을 크게 평가하여 유교식 사액사당으로 해남 대흥사 내 표충사(表忠祠)와, 묘향산 보현사 내 수충사(酬忠祠)를 건립하였다. 이어 두 사당에 친필편액을 내리고 매년 봄ㆍ가을에 제수와 축문을 보내 국가제향을 봉행하도록 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표충사도 함께 폐쇄되었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일인에 의해 제향도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가제사로서의 맥은 끊어졌지만 이후에도 대흥사 표충사, 밀양 표충사, 묘향산의 수충사 등에서 매년 기일에 서산대사 대재(大齋)를 올려왔다.
근래 들어 대흥사에서는 2008년부터 서산대제를 복원하기 위한 여러 노력과 고증을 거듭하였다. 이에 2012년 4월 서산대사 탄신시기에 국가제향의 위상으로 서산대제를 재현하여, 2016년 4월 현재 5회의 서산대제를 치르고 있다. 서산대사의 위상은 조선시대 국가제향에서 서산대제가 차지하는 위격(位格)에 그대로 담겨있어, 뒤늦게나마 서산대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재조명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2014년 4월 25일 대흥사 경내에서 봉행된 ‘탄신 제494주년 호국대성사 서산대제(護國大聖師 西山大祭)’의 설단과 의식 절차를 간략히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단상에는 중앙의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향 우측과 좌측에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四溟大師)와 처영대사(處英大師)의 ‘구국 삼화상(救國 三和尙)’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홀기에 의거하여 제물을 진설하였다. 제례를 봉행하기 예제관이 절로 들어오는 행렬을 제하고 국가제향을 재현하는데, 그 순서는 전폐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국가제향이 끝나고 불교식 다례 법요식이 거행되었는데, 제향봉행을 고하는 증명을 청한 다음 국민의례, 삼귀의 제창 및 반배, 반야심경 봉독, 추모예포 및 묵념, 서산·사명·처영대사 영전에 헌다하였다. 이 날은 소설 "서산"과 "대둔사지" 등을 간행하여 영전에 봉정하였다. 서산대사 행장기와 봉행사, 기념사 낭독에 이어 총무원장 법어,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에서 보내온 추도사, 격려사 등에 이어 사홍서원으로 불교식 다례가 마쳐졌다.
승려의 신분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 선 서산대사의 정신을 기리는 국가제향인 서산대제는 애국애족의 정신을 실천하는 장이며, 남북한이 동시에 실천하는 의미 있는 제향으로, 대표적인 무형유산이라고 하겠다. 대흥사에서는 서산대제의 국가제향 복원사업을 필두로 호국불교를 기리는 일련의 사업을 함께 추진 중이다. 우선 서산대사의 또 다른 사당이 있는 북한의 보현사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남북 합동제향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울러 가칭 ‘호국 의승병의 날’ 국가기념일 지정, 해군 함명에 ‘서산 휴정함’ 명명 청원, 호국대성전ㆍ호국기념관ㆍ무명의승군 위령탑 건립계획 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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